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실화,,,,,9편(3)

Views : 1,081 2015-03-02 22:17
자유게시판 127029788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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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탈북자들과 함께 하면서 가장 초조하게 시간을 보내던 것은 지난해 2월 달 팀을 조직하고 이동할 때였다.

아마 1월초중순경 통일을 준비하는 탈북자협회 시무식에 참가하고 다음날 중국으로 들어가려고 할 때에 한 목사님이 저에게 지금 급히 탈출하여야 할 탈북자들이 있으니 급히 도와달라고 말씀하신다.

나는 1월은 이미 7-8명이 조직되어 곧 출발하여야 하기에 1월은 아니 되고 2월은 내가 중국입국 비자를 다시 받아야 하기에 3월 달이면 제가 도와드릴 수가 있다고 말씀드렸다. 그분은 저의 이야기를 듣고 3명의 탈북자들은 어떤 일이 있더라도 무조건 가장 빠른 시일 안에 움직이지 않으면 안 된다고 말씀하시면서 그에 대한 설명을 하여주시였다.

나는 탈북자들과의 약속을 어기는 일이 거의 없었고 당장 출발준비를 끝내고 대기 상태에 있는 사람들을 다시 헤쳐 모여식으로 조를 편성한다면 나도 신뢰를 잃게 되고 탈북자들이 많은 실망을 할 것이 틀림이 없었다.

나는 도움을 요청하신 분께 최대한 노력을 하겟다고 말씀드리고 탈북자 한 사람당 인민페(중국돈)1000원씩 준비시켜 주시면 감사하겠다고 말씀드렸다. 나는 나날이 어려워 가는 재정상태의 어려움을 조금이나마 덜어보려고 2007년 1월1일을 기점으로 저에게 도움을 요청하시는 선교사님이나 혹은 인권관련 일들을 하시는 분들께 그들이 보호하고 있는 탈북자들을 한국에 보내려면 일인당 무조건 1000원씩 준비하여 나에게 보내도록 하였으며 내가 보호하고 있는 분들에 대하여서는 100% 무료로 탈출시키기로 하였다.

3명의 탈북자들을 한국으로 데려오려고 노력하시던 그분은 돈은 걱정을 아니 하여도 된다고 하면서 나를 위하여 늘 기도 하시겠단다. 나는 중국 연변에 도착하여 쉴 틈이 없이 이미 준비되어 있는 탈북자들과 함께 3국으로 탈출의 길에 올랐으며 모든 일들은 순조롭고 성공적으로 진행되였다.

이제는 2월 팀을 어떻게 하나 제 시간 안에 3국으로 탈출시켜야 하는데 여권의 중국입국 비자를 원만히 해결하지 못하면 나도 다시는 중국에 들어오지 못할 수도 있었다. 내가 한국에 나와서 비자를 신청한다는 것은 자살행위나 같을 것이다. 지금 많은 탈북자들이 중국에 가려고 하여도 중국 측에서 비자를 발급하여 주지 않아 중국으로 가지 못하고 있었다.

나라고 예외가 될 수는 없었다. 지금까지는 1년 복수비자로 그런대로 자유롭게 중국을 마음대로 드나들었지만 앞으로는 어떻게 되겠는지 조금도 전망이 내다보이지 않았다. 내가 생각하고 있는 방법대로 모험을 한다고 하여도 최소한 23일 이상의 시간이 소요된다.

일상의 생활로 보았을 때 2월까지라면 많은 시간이 있는 것 처럼 느껴질 수 있지만 나는 아무 때나 돈만 있으면 생각나는 대로 탈북자들을 인솔하고 떠나는 식으로 일한 것이 아니라 모든 조건이 충분히 갖추어져 있어도 나의 방식대로 시간계산이 맞지 않으면 절대로 모험을 하지 않았다.

한국에 들어갔다가 다시 중국에 나온다는 것은 담보가 없지만 내가 여러 곳을 통하여 알게 된 심수여행사는 될 것 같았다. 심수는 홍콩 맞은편에 있는 도시로서 중국에서 개혁개방의 물결이 가장 빨리 들어오고 현대화된 발달된 도시이다.

그곳에서 청도 공안국을 통하여 여권비자를 연장할 수 있다는 대답이 나에게로 온 것이다. 나는 즉시 EMS특급 택배로 여권을 심수로 보냈다. 그 여권이 누구의 손에 들어가서 범죄적 목적에 사용되겠는지? 확실하게 비자가 연장되어 나의 손에까지 되돌아 올수 있는지를 계속 근심하면서 기다리는 재간밖에 없었다.

2월에 이동하게 될 팀 중의 3명은 국경경비대 출신이여서 중국어를 전혀 모른다. 그들은 오직 성경공부만 하고 있었다. 나는 2월 달에 할일들을 원만하게 진행되게 하기 위하여 1월 달에 3국으로 가게 된 팀 중에서 중국어를 능숙하게 잘하면서도 침착하고 담대한 여성 한분을 빼돌려 2월 팀에 함께 할 수 있도록 조를 구성하였다.

탈북자들이 심리적 안정 상태나 피복(옷류)등이 완전무결하다 싶이 준비되였는데 나의 여권이 확실하게 된다 안 된다 대답이 업는 것이다. 여러 가지의 일들을 하면서도 나의 머리 속은 여권생각으로만 가득차 있었다. “이 일이 잘돼야 하는데, 아무리 늦어도 2월15일까지는 여권이 무조건 나의 손에 들어와야 움직일 수가 있어"나는 계속 같은 생각만 반복적으로 하면서 정말 초조하고 안타까운 나날을 보내지 않으면 안 되었다.

지금 두 곳의 피난처가 나의 신호만 기다리고 있으니 그들이 얼마나 안타까워 할까? 내가 하루 하루 손꼽아 여권오기를 바라고 있었는데 생각보다 이틀이나 빨리 도착한 것이다. 이쯤 되면 모든 것이 다 잘될 것 같은 예감이 든다. 나는 성탄절과 김정일 생일날에 꼭꼭 한 팀씩 선물로 3국을 탈출시키였다.

이번에도 단순한 선물이 아니라 그들이 한국에 나와 열심히 살면서 김정일 독재를 뒤집어 엎을 도도한 철의 대오를 이루고 투사가 되기를 바랐던 것이다. 지난해는 음력설이 2월18일 이였고 나는 음력설을 맞추어서 탈북자들을 국경선을 돌파하게 할 생각을 갖고 있었다.

하지만 탈북자들을 보호하고 계시던 분들의 반론도 만만치 않았다. 음력설이니 중국의 공안이나 변방대가 특별 경비를 설 것이기에 위험하단다. 그러나 나에게는 물러설 틈이 없었던 것이다. 내가 고집이 세서가 아니라 이 시기를 놓치면 탈북자들이 국경선을 넘어가는 데는 오히려 더 큰 위험이 도사리고 있을 것이기 때문에 나는 출발 날자를 미룰 수가 없었다.

두 곳 피난처에 있던 탈북자들을 모두 한곳으로 집결시키였다. 나는 이미 한달 전부터 남자들에게 그들이 나가야 노정을 설명하여 주고 약도를 확실하게 기억하게 하였으며 나침판을 보는 방법등을 가르쳐 주었고 몇일이 멀다하게 피난처의 상태를 점검하여 보았다.

국경경비대에서 두만강을 여러 번 넘나든 경험이 있는 분들이여서 나는 크게 걱정을 하지 않았는데 천만 다행으로 그들이 내가 계획한 날자가 좋다고 하면서 자신감에 넘쳐 있는 것이다.

자신감이 있으면 성공한 것이다. 모든 일들은 바라는 그대로 되는 것 같았다. 나는 2월16일에 연길을 출발할 것이며 2월16일에 출발하게 되는 동기를 설명하여 주었다. 나는 계속하여 탈북자들을 두 조로 나누어 집밖을 어떻게 나가며 버스에 올라서 주의할 점들을 구체적으로 강조하여 이야기 하여주었다.

우리들이 출발하기에 앞서 C선교사님이 기도를 하여주셨다. 그분의 기도에서 특이한 것은 우리들이 한국, 자유의 땅에 가기를 원하며 하나님께 기도드리니 우리의 기도가 이루어진 줄을 믿는다고 하면서 우리는 한국에 있다고 하는 것이 였다.

이역 땅에서 우리탈북자들을 위하여 그토록 헌신적으로 일하시는 선교사님이 존경스러웠고 사랑으로 우리 탈북자들을 보호하시고 하나님의 말씀을 가르쳐 주신데 대하여 가슴속으로 감사의 인사를 드리고 드리였다.

우리는 이미 준비된 두 대의 차에 나눠 타고 버스역 근처에 간 다음 나와 K선생이 우리가 타고 가야될 차에 올라가 손님들이 동정을 살펴보고 다시 우리 일행들이 있는 곳으로 갔다.
우리는 음력설을 맞으며 여행객이 많을 것을 예견하고 미리 차표를 살 때 아래층으로 편안한 좌석을 구입하여 놓았었다.

차가 출발하기 5분전, 우리는 일행들이 탄 승용차를 한대씩 버스옆에 대고 탈북자들이 버스에 오르도록 하였다. 여자들이면 괜찮겠지만 3명의 남자는 특히 조심하여야 하고 남의 눈에 띄는 경우 아니 좋은 일들이 발생할 수가 있다고 생각되여 버스옆에다 승용차를 세워두고 버스에 오르도록 하였던 것이다.

연길만 벗어나면 모든 것이 자유롭고 편안하게 갈수가 있다. 연변, 여기는 너무나 많은 탈북자들의 피와 눈물이 고여 있는 곳이다. 우리는 드디여 이곳을 빠져나가게 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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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리랑007 [쪽지 보내기] 2015-03-02 22:47 No. 1270297938
31 포인트 획득. 축하!
연변 자치구 참으로 징글 징글 하겠네요 연변은 서울을 옮겨놓은 중국내 서울이라고 하는데 참으로 징글 징글 조선족이 서울에서 못쓸것은 다 배우고 와서 같은 민족을 괴롭히기도 하죠 제말이 맞죠 탈북자 심문하는데 조선족이 더 악랄하게 하죠 제말이 맞죠 징글 징글
하늬하늬 [쪽지 보내기] 2015-03-02 22:59 No. 1270297955
74 포인트 획득. 축하!
넘 담백한글 감사히 잘 읽고 있습니다 실화라니 더욱더 놀라웁네요
manila2013 [쪽지 보내기] 2015-03-03 09:40 No. 127029857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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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하늬하늬 님에게...그러네요. 실화라니 더 와 닿군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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