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실화,,,,,11편(2)

Views : 1,006 2015-03-03 03:40
자유게시판 127029835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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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시린호터 간수소에 들어온 지도 퍽 오랜 세월이 흘러간 것 같다. 처음 며칠은 하루 종일 조사를 받아야 했고, 조사관들은 이것저것 계속 반복하여 질문을 하니 나도 짜증이 날 정도로 시끄럽고 국가의 법률에 따라 기계적으로 사람 잡이를 하는 조사관들이 인간 로봇으로 밖에 보이지 않았다.

구류(구속)연장도 9월10일로 연기되였고 나는 언제 기소가 될지, 재판은 언제 받을 수가 있는지 알 수가 없었다. 나는 조사 받을 때마다 우리 일행에 대하여 잘 처리 하여 달라고 말은 하였지만 수잉지는 처음과 달리 아무런 응답이 없다.

9월초의 내몽고 날씨는 쌀쌀한 것이 한국의 11월 날씨처럼 차갑게 느껴졌다. 나에게는 갈아입을 속옷도 없고 따뜻한 옷 한 벌도 없어 감방 안에서 춥게 지내지 않으면 아니 되였다.
다른 수감자들은 벌써 따뜻한 옷을 입고 있었으며 가족들로 부터 계속 영치 물자를 받음으로서 옷을 받고 있었으며 가족과 형제가 있고 친구들이 있어서 따뜻한 옷을 입고 있는 그들이 부러웠다.

한여름 옷을 입고 기를 펴지 못하는 나를 보고 수감자들은 이제 겨울이 오면 간수소에서 옷을 준다고 한다. 그때가 언제이겠는지? 나는 지난 6월말에 중국에 들어 오다나니 얇은 옷 한 벌만 입고 있었던 것이다.

점심시간이 다 되여 나이 많은 경찰관이 나를 불러 내여 현관문 쪽으로 데려가서 내가 보니 현관문안쪽 소파에 건장한 남자 몇 명이 있었는데 그중에서 키가 크고 후리후리한 남자가 한눈에 들어오는 것이 였다.

그는 무슨 일이 있었는지 얼굴에 노기가 서리여 가지고는 경찰관들과 무엇인가 이야기 하고 있다. 조금 있더니 그는 나에게로 오면서 나의 이름을 부르면서 "수고합니다."라고 이야기 하면서 자신이 한국 영사라고 소개를 하는 것이였다.

북경에서 여기까지 오자면 비행기를 두 번은 갈아타야 올 수 있고 내가 일을 잘하지 못하여 이렇게 되였는데 그가 수고 한다고 말하니 나는 무엇이라고 말할 수가 없어 공손히 인사를 하면서 미안합니다. 라고 대답을 하였다.

나와 영사님 조사국장과 통역원이 간수소 부소장을 따라 간수소 4구역 앞에 있는 부소장 방으로 들어갔다. 부소장 방은 햇볕이 전혀 들어오지 않는 어둠침침한 방이였으며 방안에는 큰 책상과 함께 벽주위에 여러 개의 걸상들이 가지런히 놓여 있었다.

책상을 가운데로 하고 나와 영사님이 마주 앉고 부소장과 수잉지와 통역원은 벽주위에 있는 걸상에 앉아 있었다. 영사님은 수고가 많았겠다고 하시면서 다시 한 번 나를 위로 하여 주시고 어느 곳에서 어떻게 되여 체포되게 되였는가? 때리거나 인권침해를 당한 일은 없는가?등 여러 가지로 자세하게 물어 보신다.

나는 영사님께 먼길을 오시게 하여 죄스럽다고 하면서 담배가 있으면 한대를 달라고 말씀드리였다. 영사님은 큰 책상위로 허리를 굽히면서 나에게 담배를 주시였고 라이터로 불을 켜서 담배불도 붙여주시면서 담배를 피우는가고 말씀하신다.

나는 술은 마시지 못하고 담배는 조금씩 피웠는데 여기에 들어오니 화가 번져져서(나서) 도저히 참을 수가 없고 술도 먹고 싶고 담배도 피우기 싶다고 말씀드리였다. 나는 그동안에 있었던 일들을 간략하게 말씀드리고 지금 이 간수소에 나와 함께 이동하다가 체포된 탈북자 3명이 있는데 조사국장이 잘하면 그들이 나와 함께 한국 갈수가 있다고 하는데 믿을 수가 없다. 그러니 영사님이 해당 기관과 연결하여 탈북자들이 북송되지 않게 최선의 노력을 다하여 주실 것과 탈북자들이 명단이 한국 외교부 동북아 어느 과에 있을 거라고 말씀드리면서 만약 그곳에 탈북자들의 명단이 없으면 한국의 xxx 단체에 문의하시면 탈북자들의 명단이 있을 거라고 하면서 탈북자들이 이름과 나이를 말씀드리였다.

영사님은 내가 말씀드리는 것을 일일이 다 받아 적으시고 한국에 전할 것이 있으면 이야기 하라고 말씀하시기에 나는 허광일 회장님과 또 다른 한분에게 나의 소식을 전하여 달라고 하면서 내가 기억하고 있는 전화번호를 말씀 드리였다.

나는 일상적으로 전화번호 하나도 기억을 못하고 있었지만 내가 처음 체포되였을 때 전화번호 수첩에서 3명의 전화번호를 짧은 순간에 기억하였던 것이다. 그런데 그 전화번호가 틀림이 없는지 나는 확신할 수가 없어 만약 허광일 회장의 전화번호가 틀리면 인터넷 홈페이지에서 통일을 준비하는 탈북자 협회를 찾아 허회장에게 나의 소식을 전하여 주실 것과 날씨가 추워서 어려우니 겨울옷을 한 벌만 공급하여 주시면 감사하겠다고 말씀드리면서 누구도 나의 석방을 위하여 일하지 말 것을 당부하는 말씀을 드리였다.

내가 허광일 회장을 찾은 것은 내가 중국에서 일하다 잘못되면 모든 것이 끊어지니 만약의 경우를 생각하여 허광일 회장께 북한의 모모씨의 전화번호를 남겨놓으면서 나와 연결이 끊어지면 자동적으로 내가 남겨놓은 전화번호에 전화를 하되 무슨 요일 몇 시에 전화를 하되 서로가 이름을 묻지도 말고 밝히지도 말고 전화를 하면서 일을 하여 주실 것과 한국에 나오는 누구를 찾아서 잘 키워달라고 부탁을 하였던 것이다.

또한 내가 9월로 예정하였던 청도에 있는 탈북자들도 5-6명이 대기 하고 있는 상태인데 그들이 다른 방법을 찾을 수가 있도록 하자면 허광일 회장에게 소식을 알려주어야 허회장이 나의 부탁을 받고 어떻게 대책을 세울 수가 있을 것이다.

내가 중국에서 일할 때 허형이 나의 신변문제로 많은 걱정을 하여 주시였고 그분이 자신이 돕고 있던 탈북자들 몇 명을 나에게 부탁을 하시여 내가 3국 탈출을 성공시키였다. 우리는 표면상 탈북자들의 3국 탈출을 실행하고 있었지만 최종목표는 변함이 없이 북한이 였다.

북한은 변할 수가 없는 우리들의 목표이고 어떤 수단과 방법을 다하여서라도 인민들의 의식 변화를 유도하고 북한 민주화를 위한 씨앗들을 만들고 심는 일은 쉬지 말고 꾸준히 하여 나가야 할 중대한 일들이였다.

허광일 회장님도 늘 북한의 민주화는 말이 아니라 실천에 어떻게 구현하겠는가를 강조하여 오셨기에 나는 그에게 비상연락망을 알려주고 움직여 달라고 부탁을 하였던 것이다.

영사님께 제가 드릴 말씀은 다 드리고 나니 영사님은 나에게 한 달에 한 번씩 찾아올 것이며 재판 할 때에 자신이 오지 못하면 다른 분이라도 재판에 참가할 수 있도록 노력하겠다고 말씀하셨다.

3명의 탈북자들은 현실적으로 대한민국 국민으로 등록도 되지 않고 국제 관계문제가 있으니 어렵지만 그들의 강제 북송을 막고 한국으로 갈수 있도록 노력을 다 하시겠다고 하신다. 영사님은 나의 건강과 식사 등 생활에서 어려운 점 들이 있는가를 꼼꼼하게 알아보시고 장미숙이 여기 간수소에 있는데 그가 식사가 입에 맞지 않아서 몹시 고생하고 있다고 말씀하시였다.

영사님은 나의 수감소 생활의 어려움을 진심으로 가슴 아파하시고 도와주시려고 하시였다. 우리가 헤여지기 전에 영사님께 간수소에 이야기 하셔서 성경책을 볼 수 있게 도와 달라, 이놈들이 나의 책을 빼앗고 주지 않으니 영사님이 한권을 구하여 보내주시면 감사하겠다고 말씀드리니 영사님은 자신이 북경에 돌아가시면 나의 옷과 성경책. 그리고 한국의 고추장과 한국제 라면도 보내주시겠다고 대답을 하시는 것이였다.

나는 감옥에 들어와서 영사님과 대사관에 부담을 드리는 것 같아 옷과 성경책만 보내주시고 라면이나 고추장은 보내지 마시라고 말씀드리였다. 영사님은 떠나시면서 나의 이름으로 간수소에 300원의 돈을 맡기시면서 필요한 생필품을 사는데 사용하라고 하실 때 먼 길에 오신 것도 미안하고 감사한데 나의 수감생활을 걱정하시면서 도와주시니 정말 무엇이라고 말씀 드릴수가 없었다.

북한에서 살아가던 그 몸 그대로 나는 중국에서 노예로도 살아보았고 한국에서 국적을 취득한 이후에는 한국인으로써 중국에서 일할수가 있었다. 오늘 중국에서 수감생활을 하여도 한국이라는 국가의 보호가 있으니 언제인가는 형식적이든 내실이 있든 나는 재판을 받을 수가 있고 발언권을 가지고 변론을 할 수가 있다.

만약 내가 탈북자로서 중국에 체포되였다면 어떻게 되였을까? 나는 구속 영장도 없고 기소도 없이 재판은 꿈에도 상상도 할 수가 없을 것이 아닌가. 오늘날의 대한민국의 보호를 받고 있다는 것이 새삼스럽게 떠올랐고 감사하였다.

나는 언제인가 판결을 몇 년을 받든가? 아니면 추방이라도 될 수 있지만 나와 함께 떠났던 일행들은 어떤 운명에 처할 것인가? 한 반도에서 같이 태어나 우리는 같은 삶을 살아왔지만 나는 한국의 보호를 받을 수가 있고 은심이. 영옥이. 갈량이는 그 어떤 보호도 받을 수가 없다.

그들은 재판에 대하여 상상도 못하고 자기의 의지는 빼앗기고 살아서 다시 햇볕을 볼 수 있다는 담보가 없는 북한으로 끌려가게 되는 것이다. 정말 생각하기에도 너무나 끔찍스러운 것이 멀리도 아닌 바로 나의 눈앞에서 벌어지고 있었던 것이다. 영사님께도 말씀드렸고 수잉지도 아직은 잘 모르겠다고 하니 그들이 한국에 함께 갈수 있기만을 간절히 기도하여 보는 것 외에는 나는 너무나 연약한 존재였다.

그들도 인간이며 우리의 형제들이다. 그들에게도 삶의 권리는 보장되여야 하는 것이다. 나는 우리 일행의 강제 북송만큼은 반드시 막고 그들에게도 삶의 길이 열리기만을 바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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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anila2013 [쪽지 보내기] 2015-03-03 10:01 No. 1270298618
7 포인트 획득. ... 힘내세요!
아니 한국영사가 그 먼길을 찾아왔다고요? 참 신기 합니다. 필리핀에서 언론화 안되면 영사는 얼굴도보기 힘든데 말이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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