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실화,,,,,18편(9)

Views : 2,158 2015-03-04 02:42
자유게시판 127030046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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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함께 산을 내려와 동행하신 분의 집에서 오래동안 이야기를 나누였다.

주로 그분이 말씀하시고 나는 듣고 모를것이 있거나 의심이 가는부분이 있으면 나는 직설적으로 물어보군 하였다.

최근에 두만강 연안의 북한 주민들이 비료를 요구하고 있는 사례가 늘어나고 있으며,재정적으로 안받침 된다면 비료를 공급하여 주면 좋겠다는 이야기도 나왔다.

지금은 옛날 같지 않아서 힘이 있으면 산을 개간하여 밭도 만들수가 있으며 그 대가로 한평당 22-25원씩 국가에 바치면 된단다.
주민지에서 멀리 떨어진 산에서 농작물을 심어야 하기에 거름으로 농사를 짓자면 너무 힘들고 품이 많이 먹고 그리하여 선택하는것이 중국산 비료이고,비료에 대한 수요는 높단다.

자신은 북한에 비료를 공급하여 주는 일을 하여 보고 싶다고 한다.

다음은 내가 질문을 하였다.

여기 근처 어데인가 살고 있다는 북한 여자가 지난해 애기를 낳았다고 하는데 그 여자가 지금은 어떻게 지내고 있는가?

내가 그런 질문을 하게 된것은 탈북자 부부가 두만강을 넘어와 강옆 가까운 산속 바위굴에서 함게 몇년을 살면서 애기를 낳았는데 그들이 힘들게 살아가고 있다는 이야기를 들었기에 지금은 어떻게 살아가는가? 그들이 여기에 있다면 언제인가는 만나 보고 싶었다.

그분이 말씀이 북한 가까운 곳에서 사시던 탈북자들이 중국에 넘어와 자기네 끼리 산속에에 돌아 다니면서 만났고 마을에서 10리 정도 떨어진 산속 자연 바위굴에서 살아가면서 주민 부락에 내려와 삵일을 하였단다.

탈북녀는 산속 바위굴에서 두번 애기를 낳았는데 그들의 힘으로는 애기를 키울수가 없어 2-300원씩 받고 중국 사람들에게 애기를 주었다고 한다.

지금 기억으로는 그녀는 두명의 애기를 낳아서는 남에게 주고 또다시 애기를 낳아서는 남에게 주었는데 그후에 그녀와 남편이 북한에 강제 송환 되였고 세월이 흘러서 남편은 소식이 없고 여성분 혼자서 중국에 들어와서 살아가고 있다고 한다.

집 주인님은 "오늘 야네 또 오겠는지 모르겠다."하시면서 잠지리에 누우신다.

여기서 두만강까지는 수백메터도 아니되는 지점인지라 그날 따라 이상하리 만큼 잠을 들수가 없었다.

우리가 아침 식사를 끝내고 화룡으로 가는 차를 타려고 대문밖을 나서니 눈에 익은 북한군신발자욱이 밤새 내린 눈위에 또렸이 찍혀 있다.

신발 자욱을 보면 군인 두명이 내가 잠을 자고 있던 집주변을 한바퀴 돌아서 창문쪽 울바자 밑에서 서성대다가 두만강가로 곧게 되돌아간 발자욱들이다.

이집에 북한 군인들이 자주 드나든다는 이야기는 들었지만 막상 내가 잠을 자고 있을때 승냥이 같은 자들이 나의 주변에서 맴돌았다고 생각하니 소름이 오싹하게 돋아난다.

집 주인님 말씀으로는 두만강 국경 경비대 군인들이 담배나 술을 얻으려고 왔다가 자기네 집에 손님이 있으니 되돌아 간것 같다고 한다.

일단은 이번 중국 여행길에서 예상 밖으로 두명의 어린이를 한국으로 갈수 있게 하였다고 생각하니 그것은 생각밖의 성과이고 함께 일할수 있는 분들을 많이 선택하지 못한것이 흠이다.

다들 좋은 말씀은 많이 하지만 탈북자들을 받아 안으라면 난색을 표하군 한다.

내가 꽁짜로 도와달라는것도 아니고 집에서 할 일이 없이 휴식하는 분들에게 연변에서 평균 임금의 중간 이상의 사례비를 드린다는 조건에서도 그 액수가 불만이다.

앞으로 탈북자 지원은 탈북자에게 직접 지원을 원칙으로 하며 3자를 통한 지원도 최대한 탈북자들에게 혜택이 돌아갈수 있게 하여야 한다.

간접 비률이 높아지면 직접 비률이 낮아지게 되는 것이다.

내가 돈버는 재간이 좋은것도 아니고 어느 교회나 단체에서 나에게 후원금을 주는것도 아니다.

제한된 재정으로 효과적으로 잘 나누어서 사용하자면 씀씀이를 통제 하여야만 하는것이다.

일단은 연길,룡정, 화룡,왕청지역에서는 도와 주시겠다는 분들이 있지만 핵심적 역활을 하실 분은 없다.

그런대로 일정을 마치고 귀국하여 나는 성민형과 이민규님과 김영열님께 도와주셔서 감사하다고 말씀을 드리고 앞으로는 어떻게 일을 하여 나갈것인가를 이야기 나누어 보았다.

모두들 탈북 청소년 만큼은 무료로 지원을 하여 준다는데는 같은 견해 들이지만 유휴 자금을 어떻게 확보를 하는가?에 초점을 맞추어 이야기를 나누엇다.

겨울은 나에게는 시련의 계절이 였다, 고정 직업이 없는 나는 시간이 나는 대로 일당로동을 하여야 하는데 날씨가 풀리기 전에는 일 거리가 나오질 않는다.아직도 여권문제는 회신이 없다.여권문제가 잘 풀려야 모든 일을 확실하고 계획적으로 잘 할수가 있고,그것이 잘 풀리지 않으면 나도 탈북자 여권발급 제한에 묶여 아무 일도 할수가 없다.

이번에도 어렵지만 나는 여권을 발급 받을수가 있엇다. 떠들어 대는 자들이 많으면 머리가 아파서라고 할까? 미운놈에게 떡하나를 더준다고 여권발급하여 주고 조용히 있으라는 암시인것 같다.

이번 길에는 마반산에 사시는 분에게도 집을 구하여 드리고 화룡에 사시는 탈북자들에게도 가능하면 무엇인가를 조금은 도와드려야 할것 같다. 나는 무사히 중국에 도착하였고 지금은 내가 노예 살이를 하였던 그 산 골짜기를 따라 산으로 오르고 있다.

주변은 캄캄 하지만 나는 이곳을 수많이 드나들었으며 화룡을 떠나 다른곳에 살면서 여기로 올때면 늘 이 길로 다니였던 경험이 있어 오늘 밤도 이곳을 지나 가는데 아무런 불편이 없다.

약속시간이 다 되여 우리가 만나기로 하였던 장소에 가보니 어둠속에서 누구인가 나의 이름을 부르며 달려오고 있엇다.

길남이였다. 그는 멀리서도 나의 모습을 용케도 알아보고 반갑게 달려와 인사를 한다.

나는 시거 마을에서 한달가량 길남이와 함께 일한적이 있으며 이후에도 화룡에 오면 시거마을에 있는 탈북자들에게 다들 시내로 도망가라고 추동질을 많이 하였엇다.

그때의 길남이가 토굴에서 살다가 내가 온다고 하니 멀리 유무고래밑에 까지 와서 나를 기다린것이다.

우리는 반갑게 인사를 나눈후 당신들이 살고 있는 모습을 보고 싶어 왔다고 이야기 하면서 함께 가서 집구경이나 하면서 이야기 하자고 하였다.

길남은 지금은 유무고래에는 집이 없고 앞동산쪽에다가 새로 토굴을 만들었고 그곳에서 엄아바이랑 함께 살고 있단다.

다들 북한에 잡혀가고 몇명은 한국 간다고 떠난것이 소식이 없고 나만이 한국에 가서 춘국이네를 도와주고 멀령에 누구네를 도와주었다는 소식을 들었단다.

어두움을 이용하여 마을 뒤편에 있는 오솔길로 조용히 빠져나가 길남이네가 살고 있는곳을 찾아 가보았는데도 나는 나의 앞의 그의 집을 찾아 볼수가 없엇다.

나는 "어데 집이 있소?"하고 물으니 길남이가 그개(그거야.)그개,하는것이다.

나의 발 앞쪽을 찬찬히 내려다 보니 옛날 묘지 비슷하기도 한것이 어렴풋이 보이였다.

초막문 앞쪽에는 엄아바이가 담배를 피우고 있엇던듯 석쉼한 목소리로 " 오시느라 수고많았소"하면서 나에게로 오신다.나는 그분께 어려운곳에서 고생을 많이 하신다고 하면서 인사를 드리였다.

그분은 나에 대하여 알고 있엇지만 나는 그분을 본 기억이 없다.
내가 이곳에서는 한달 가량 살았던적이 있는데 그때는 내가 아는 분이 자기네 집에서 함께 일하자고 수차례 말하기에 그럼 내가 도와주는 셈치고 조금 있겠다고 하여 춘국이네 집에 있게 된것이다.

이 마을에 50명이 넘는 탈북자들이 우글 우글 하여도 나는 그들에 대하여 아는것이 없고 경찰이 멀리 청두고개를 넘어오는것 같으면 함께 있던 청년을 누구와 누구네 집에 가서 알려주거라고 시키여 탈북자들이 피신하게 하였고 내가 직접 탈북자들을 만난 일은 거의가 없었다.

나는 이 마을을 떠나서 다른곳에서 일할때도 가끔씩 이 마을을 걸쳐 지나가거나 혹은 들른적이 있으며 여기에 있는 탈북자들은 내가 어데가서 돈이나 잘 버는가?하여 부러워 하는것 같았다. 나는 기회가 있을 때마다 여기서 일하면 돈을 한푼도 아니 주는데 도망을 가라고 수차례 말하여 주었지만 갈곳이 없었는지,아니면 이곳을 떠나면 굶어 죽는다고 생각을 하여서인지 그들은 토굴속에서 살면서 그 끈질긴 생명을 연장하여 보려고 마지막 몸부림 치고 있는것 같았다.

그들의 막이 어떻게 생겼는지 일단은 보고 싶엇다. 나는 손전등을 비추면서 여기 저기 살펴보니 어데서 주어온것 같은 방수포를 벽면에 두르고 천정도 방수포로 깐깐하게 손질을 하여 꾸몃다는것이 알린다.

가재도구랄께 없다.밥그릇이 몇개 보이는것 같고 무엇에 사용하던것 인지 알수 없는 자그마한 소랭이가 아궁쪽에 뎅그렇게 놓여 있는것이 이들 살림의 전부이다.

나는 밖으로 나와 어떻게 되여 이렇게 처참하게 살아가게 되였는가고 물어보았다.

경창들이 자주 와서 유무고래에 토굴을 만들었는데 그곳에도 경찰이 몇번 와서 탈북자들이 수많이 잡혀갔고 자기네는 유무고래에서 겨우 살아났단다.

유무고래쪽에는 이제는 아니 간단다. 오늘 여기에 와서 또다시 새로운것을 알게 되였다.

평온해 보이던 이 자그마한 놓촌 마을에서는 탈북자는 공짜 노동력이라는 인식이 확산됨으로서 탈북자들을 데려다 일을 시키고는 돈을 못주면 쌀이라도 주어야 하자만 린색하기로 그지 없는 자들이 한줌의 쌀도 제대로 주지 않는단다.

내가 여기서 살았을때는 탈북자들을 때린다는 말이 없었는데 이제는 마음대로 두둘켜 패고 탈북자들에 대한 동정심은 나날이 없어져 갔다.

길남은 한국가는 문이 빨리 열렸으면 좋겠다고 한다. 이 산자락 밑에는 진학이네가 사는 움막도 있단다. 나는 진학이 어머니을 잘 알고 있으며 진학이 아버지도 몇번은 만나본적이 있지만 어릴때 진학이,진학이 하는 소리를 많이 들었엇지만 진학이는 기억이 나지 않는다.

어둠속에서 길남의 안내에 따라 산 비탈면을 따라 움푹 패인곳에 내려와 다시 홈타기를 따라 올라가 막 근처에 달으니 진학이 아버지가 막앞에 앉아 담배를 피우고 계신다.

길남이가 올라가면서 진학이 아버지에게 내가 왔다고 소리치니 진학이 어머니가 방안에서 튕겨져 나오듯 달려 오면서 나를 그러 안고는 나보고 고생했단다.진학이 아버지도 반가워서 어절줄 몰라하고 진학이 어머니는 왜서 인지 눈물을 흘리고 있다.

내가 두분께 인사를 드릴때에 움막안에서 다큰 청년이 나와서 인사를 한다.

이 청년이 이름만 듣던 진학이고 온동네가 진학이네 라고 부르는 그 쳥년이 였다,

나는 이들과의 대화에서 맏아들이 한국행을 시도하다가 북경에서 체포되여 북송되였다가 얼마전에 다시 나왔다는것,진학이 엄마가 동네 취보주임(중국의 말단 행정에서 법률질서를 관장하는자)네 집에서 몇일을 일한 품값을 달라고 하였다가 진흙탕물속에 로인을 자빠뜨려 놓고 짓밟고 때리여서 로인의 앞 이가 다 부러져 나갔다는것을 알수가 있엇다.

지금은 폭행이 만연대가고 있다는 것을 알수가 있엇다.

진학이 어머니는 자신들이 살아온 이야기를 하시면서 계속 눈물만 흘리시였다.

진학이네는 여기에다 땅굴을 만들어 놓고 살면서도 산위에 더 올라가서 비상용 땅굴을 하나 더 만들어 놓았다고 한다.

이들은 당연히 나를 부러워 하게 되여있다. 한 고장에서 함께 있다가 누구는 한국가서 팔자를 고쳤고 누구는 경찰의 눈을 피하여 앞산 뒤산 가리지 않고 도망을 다니고 누구도 믿지 못할 이런 땅굴에서 살아야 한단 말인가.?

그들의 고생이 너무나 지독 하였기에 같은 운명의 길을 가던 탈북자가 꿈 같이 자신들의 앞에 나타나니 놀랍고 그렇게 기뻐하고 반가워 하였을것이다.

여기서 부터 정리를 하여야 할것 같다. 한집에서 탈북자를 2-30명을 수용하고 일을 시키였다면 누구도 믿지 않을것이다.

수년을 걸쳐 150 여명의 탈북자들의 피와 땀을 빨아먹은 자를 결코 용서할수가 없다.

나는 흡혈귀의 호화식 주택을 그자의 무덤으로 만들어 주리라 굳게 마음 먹었다.

나는 탈북자이다. 탈북자의 이름으로 다시는 나의 형제들에 대한 악행을 함부로 저지르지 못하도록 확실하게 가르쳐 주어야 한다. 나는 선을 좋아한다. 그리고 사랑하지만 결코 탈북자의 피와 땀으로 살아가면서 함부로 때리고 돈 한푼 주지 않는 자들을 결코 용서 할수가 없었다.

나는 길남과 진학이 아버지에게 모든 사람들에게 월 200원씩 도와드릴테니 어려울때 사용하되 반드시 도망을 다닐수 있는 돈을 남겨두라고 말하여 주었다.그리고 멀지 않아 당신들을 여기서 옮겨 집에서 살수 있게 할것이며 내가 여기에 온것을 절대로 외부에 알리지 말것을 당부를 하였다. 나는 한달에 한두번씩 여기를 올것이라고 약속을 하였다.

일단은 여기에 계시는 탈북자들을 다 안전한 곳으로 옮기워야 한다.

왕청의 룡산도에 눈을 앓는 탈북자가 있으니 누군가 도와주기를 바란단다.나는 눈병이 발생한것으로 생각하고 일단은 찾아가서 환자의 병상태를 확인하고 병치료를 도와 드려야 겠다는 생각으로 환자의 집을 찾아갔다. 골목을 여기 저기 돌고 돌아 힘들게 환자가 있다는 집을 찾아 들어가니 몇명의 북한사람들이 열심히 무엇인가 하고 있는것이다.

나는 간단히 인사를 드리고 방안에 들어 가고 있을때 웬 청년이 내가 들어가는 반대 방향에 대고 "선생님,오시느라 수고 많습니다."라며 인사를 한다.

보건대 멀쩡하게 잘 생긴 청년인데 분명히 나를 보고 인사하는것 같은데 그는 다른곳을 향하여 바라보고 있엇다.

이집의 주인은 누구인지?청년들은 무엇을 저리도 열심히 하는지?또한 이청년은 멀정한 사람이 왜서 한쪽 구석에 앉아 멍하니 어데론가를 쳐다보는지 ,나는 긍금해 나기 시작하였다.

나에게 인사를 한 청년외에는 누구도 나에게 관심이 없다.환자로 추측되는 분은 보이지 않으니 나는 누가 이집의 주인인가고 물어보았다.

주인들은 다 바같에 나갔고 늦어서 들어오신단다. 나는 이 집에 눈이 아파서 고생 하신다는 분이 있다고 하여 찾아왔는데 환자는 어데로 갔습니까?고 물어보니 나에게 인사를 하는것 같았던 청년이 자기가 눈이 안보여서 걱정이란다.

그와 이야기를 나누어 보니 그는 대단히 놀랄 만큼의 기억력과 조리있는 상상력을 가지고 있는 사람이 였다. 눈만 아프지 않았다면 그 무엇인가 하였을것 같았는데 눈도 보이지 않고 생활이 어려워지니 중국에 가서 밥이나 얻어 먹자고 들어왔다가 경찰에 잡히혀 북송되였단다. 지금 나의 앞에서 무엇인가 열심히 하고 있는 북조선 사람들을 이 맹인이 대오를 인솔하여 중국에 오게 되였단다. 믿을수가 없지만 그것은 사실이 였다.

지금 여기에 있는 청년들은 북한으로 가져갈 짐들을 정리 하고 있다. 입던 옷가지들을 동네에서 얻어왔는지?별의별 옷들이 몇 배낭은 잘될것 같았다.

손짐 정리가 끝났는지 이제는 돈을 먹는다고 한다, 나는 돈을 항문이나 장궁안에 넣는다는 말은 들어 보았지만 돈을 먹는 다는것은 여기서 처음으로 본다.

중국돈을 물에 잠그었다가 마른천으로 물기를 잘 닦아낸다음 돈을 네겹으로 접으면 길이가 1.5센치메터정도 된다.그것을 정성스레 돌돌 말아서 얇은 비닐에 싼 다음 입안에 물을 한모금 물고 돈을 넣고 물을 삼키면 돈을 먹을수가 있다. 그러하면 2-3일 후에 돈이 대변으로 함께 나오는것을 분리하여 사용 한단다.

이들이 떠나가면 앞을 못보는 청년은 갈곳이 없다.얼굴 표정은 나타나지 않는데 말하는것을 들으면 목소리에서 그가 조바심에 사로 잡혀 있다는것을 알수가 있엇다.

이제 막 시작인데 처음부터 이헣게 큰것만 걸리면 어떡하나?하는 근심이 생긴다.

내가 여기에 와서 보았으니 저를 버리면 온전하지 못한것이 어데가서 헤매다가 또 잡혀갈것이다. 나는 광남을 어떤 일이 있더라도 데려 가야 한다고 생각을 하였고 왕청에 계시는 분에게 작은집 하나를 구해달라고 부탁을 하였다.

광남은 자기는 일할수가 있으니 일자리를 소개하여 달라고 한다. 소경이 무슨 일을 하는가고 질문 하였더니 백초구 어데선가 소방목도 하여보고 무엇도 하여 보았단다.

오늘 따라 비가 내리여서 인지 택시도 드물고 버스도 아니 보인다.

나는 광남이와 함께 길거리에서 택시를 불러서 왕청에 계시는 분의 집으로 갔다.

집을 구해보라고 이야기 하니 자기네 윗칸에서 살면 된단다. 그집 윗칸은 월세를 놓던 방이 였고 지금은 사람이 없어서 비여 있다.

주인님이 광남을 돌보아 주시면 될것 같고 월세라야 얼마 되지 않으니 참 다행이였다.

이번길에 중국에 들어 와서는 처참한 모습들을 너무나 많이 보아 왔다. 룡산도에 가서 본 청년들의 움직임은 왜서인지 나의 머리 속에서 떠나가지 않고 있다.

눈에 익은 북한 지하족 (로동화) ,깁고 덧 기워서 본래의 형체를 알아보기 어려울 정도로 낡은 배낭, 우엇에 그리 다급 하였는지 사람이 들어 갔어도 그 어떤 응답도 없이 정신없이 무엇인가를 주무르고 넣고하던 모습,몇시에 두만강을 건널 예정인지,얼마 되지 않는 돈을 정성스레 비닐에 싸서 하나,하나 삼키여 먹던 모습,그들의 모습을 바라보고 있으려니 숨이 막히는것 같은 감이 들엇던것이 지금도 눈앞에 생생히 떠오른다.

지금의 인민들의 삶이 저럴것이다.째지게 가난하고 거덜이 난 경제.오직 살아야 한다는 강박 관념 하나에 사로 잡히여 정신적 여유도 없이 허둥거리며 행방을 떠나 다니는 인민들의 그 모습의 축소판을 본것 같아 마음이 쓸쓸하기 그지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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포세이똔 [쪽지 보내기] 2015-03-04 11:30 No. 1270300936
6 포인트 획득. ... 힘내세요!
혹시 유상준씨인가요?
manila2013 [쪽지 보내기] 2015-03-04 16:52 No. 127030159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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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포세이똔 님에게...유상준님은 한국에 계시지 않나요. 이분은 쿠웨이트에 계신답니다. 쿠웨이트님은 북한 인권운동을 위해서 앞으로 큰 인물이 되실듯 합니다
아리랑007 [쪽지 보내기] 2015-03-04 13:47 No. 12703012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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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음이 너무나 아픕니다. 어찌 할까요 수많은 사람들이 자신들을 희생하며 중국에 있는 탈북자들을 도우고 있으나 아주 미비한 상태이지요 누가 어찌 할수 있는것이 아니지요 정부에서도  어떠한 힘을 실어 드릴수가 없음을안타깝게 생각합니다.
manila2013 [쪽지 보내기] 2015-03-04 16:39 No. 127030157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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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아리랑007 님에게...김정은 일당들 몇몇만 지옥행으로 보내면 나머지 수천만은 비싼돼지 키우는데 
상납 할필요없이 지금보다 풍족히먹고 자유를 누리며 살수 있을턴데 참 3마리의 돼지가 한나라를 힘들게 하는구먼 지금 돼지는 어려서 앞으로 30 -40년은 더 인민들 피쪽쪽 빨아 진드기처럼 기생 할텐데 그노릇을 어찌 지켜 본답니까?
아리랑007 [쪽지 보내기] 2015-03-04 17:06 No. 12703016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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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manila2013 님에게...그러게 말입니다. 저 돼지들을 어케 잡을수 없는지 속이 부글 부글 참으로 속만 터지고 있습니다.
하늬하늬 [쪽지 보내기] 2015-03-04 17:55 No. 12703017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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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아리랑007 님에게..그러게 말입니다 ㅠㅠ도데체 우리 정부는 멀하는건지 참으로한심합니다 이런거보면 ㅜㅜ 누구를 위한 나라이고 누구를 위한 정부인지 ㅠㅠ
아리랑007 [쪽지 보내기] 2015-03-04 20:44 No. 127030209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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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하늬하늬 님에게...우리정부가 너무나 힘이 없습니다. 강대국 뿐만아니라 어느나라를 가던지 무슨 말을 해도 들은척도 안합니다. 외교적 영향력이 너무나 부족하고 힘이 없습니다. 안타까울뿐입니다.
manila2013 [쪽지 보내기] 2015-03-04 16:56 No. 12703016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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쿠웨이트님을 글로 뵈니 멈출수없는 어떤 뜨거운 피가 철철 흐르르는듯한 강한 욕망과 뜻이 글에 스며있는것 같네요. 김정은 도살되면  쿠웨이트님께서 북을 이끌수 있으면 남한에도 많은 도움이 될듯합니다
  
이집사입니다 [쪽지 보내기] 2015-03-04 17:36 No. 127030166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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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타까운 일이지만  생각만 할 수 밖에 없는 것 같습니다.
힘이 되어 드리지 못해 죄송 합니다.
하지만 읽어본 내용은 가슴이 아픔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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