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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어장수 문순득씨 이야기...2(12)

Views : 3,622 2017-01-21 22:41
자유게시판 127275083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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흑산도 유배 정약전의 ‘표해시말’

조선조 유배의 섬 흑산도의 홍어 대상 문순덕은 1801년 12월 홍어 사러 출항했다가 풍랑을 만나 제주도 남방 유구국(오키나와)을 거쳐

여송국(呂宋國, 필리핀 루손섬)에 다시 표류 기착했다가 마카오, 베이징을 거쳐 3년 2개월만에 귀국했다.


이 무렵 전남 신안군 우이도(牛耳島 소흑산도)에는 천주학과 관련 실학자 정약전(丁若銓)이 유배되어 문순득씨 집안에 거처를 두고 있었다.

정약전의 동생 다산 정약용(丁若鏞)은 전남 강진에 유배되어 있었다.

문순득이 장장 3년 넘게 표류해온 이야기는 정약전에 의해 ‘표해시말’(漂海始末)로 기록되어 전해왔다.

또 당시 포르투갈 식민지이던 마카오에도 청나라 관리가 조사한 문순득의 기록이 보존되어 있다.

문순득은 류구국에 기착하여 필담(筆談)과 몸짓 등으로 대화하고 필리핀에서는 현지 토속어를 익혀 현지인과 소통하고 청나라 표류인과도 대화했다.

문순득이 귀국후에는 제주도에 표류해온 여송국 난민들의 통역을 맡아 무려 9년만에 필리핀 사람임을 밝혀내고 중국을 거쳐 본국으로 송환할수 있었다.

 
   
    ▲ 문순득의 표류 여정

나라에서는 이같은 문순득의 공적을 헤아려 종 2품 가선대부 벼슬을 담은 ‘공명첩’을 내려 이를 아직도 후손들이 보존하고 있다.

유구국으로 표류, 현지인들과 친화

문순득은 1801년 12월, 작은 아버지 등 일행 6명과 함께 홍어를 사러 태사도로 떠났다가 강풍에 밀려 11일간이나 망망대해를 떠다니며

기진맥진 한채 육지에 기항하고 보니 유구국 대도(大島)였다.

조선인 표류객에게 유구인들은 친절했다. 당시 유구는 조선에 조공을 바치는 나라였다.

표류민들은 모두 중국을 거쳐 본국으로 송환하는 것이 관례였다.

당시 세상천지는 중국, 조선, 일본만 존재한 것으로 인식됐다.

문순득 일행은 대도를 거쳐 유구국 수도인 나하로 이동하여 백촌에서 6개월간 머물었다.

이때 현지인들은 번갈아 가며 일행을 초대, 환대해 주었다. 문순득은 열심히 현지 토속어를 익히고 풍습을 배워 친화력을 보였다.

유구인들은 남녀 구분없이 한자리에서 차 마시며 담배를 권했다. 담뱃대, 담배통은 늘 몸에 지니고 가래침 뱉는 타구도 휴대했다. 남자는 코밑 수염을 기르고 어깨에 문신을 새겼다.

   
▲ 문슥득이 표류해서 최초로 상륙한 것으로 추정되는 류큐 아마미오 섬의 양관촌

바지를 따로 입지 않고 긴 저고리가 발까지 내려간 차림에 신은 짚신이고 갓 대신에 모자를 썼다.

남자는 말타고 여자는 대나무 가마를 탔다. 집은 네모 반듯했고 벽과 바닥을 판자로 엮어 온돌은 없었다.

장례식은 염이나 상여는 조선과 비슷했지만 여성이 앞장서는 풍습이 달랐고 무덤은 족장(族葬)이다.

토산품 마사 식물 껍질을 벗겨 실을 만들고 베를 짰다.

닥나무 종이는 귀한 제품이었다. 벼는 5월에 수확하고 고구마가 풍부하고 뱀술을 즐겼다.

문순득 일행은 유구국 생활 8개월만에 송환선을 탈수 있었다.

당시 조선인 표류민 송환선은 조공선으로 길이 31m, 폭 8m, 중량 110톤으로 복원되어 보존되어 있다고 한다.

중국 복건성 향발 표류로 필립핀 기착

1802년 10월 7일, 문순득 일행 6명을 포함한 표류민 32명과 유구인 60명이 중국을 향해 출항했다. ‘류구국 중산왕 조공선’이란

   
    ▲ 문슨득이 필리핀에서 최초로 상륙한 샤루마귀 항구

큰 깃발을 세우고 호위선도 대동하여 중국 복건성으로 향발했다.

그러나 풍랑이 심해 무려 14일이나 바다에서 헤메다가 상륙하고 보니 여송국(呂宋國)의 서남마 지방이었다.

여송국은 표류민에게 친절할 편이 아니었다.

문순득 일행은 도자기를 구워 서양으로 수출하는 청나라 사람들 마을에 의탁생활했다.

언어감각이 뛰어난 문순득은 토속어를 익혀 현지인들과 소통했다.

여송국 사람들은 붓이 아닌 펜으로 글을 썼다. 인종이 다양하고 혼혈도 많아 보였다.

사람들은 연 날리기를 즐기고 면포와 땔나무를 팔아 술 사 마시고 담배를 피웠다.

물레, 북, 베틀은 조선과 거의 유사했다.

집은 땅바닥에 기둥을 세워 2층으로 사다리를 타고 올라가는 나무집이다.

식수가 귀하여 빗물을 받아 마셨다. 남자들이 밥을 짓는 것이 신기했다.

가족이 밥그릇을 가운데에 두고 둘러앉아 손으로 먹는 것이 특이했다.

문순득은 이곳에서 서양식 성당을 처음 구경하고 닭싸움 전통도 보고 물소도 많이 봤다.

유구인들이 여송국 당국자와 협상하여 배를 띄워 먼저 떠났다.

문순득의 작은 아버지 등 4명도 유구인 배편으로 따라 갔다.

나중에 알고보니 문순득의 작은 아버지는 1804년 3월 먼저 귀국해 있었다.

이제 여송국에는 조선인 2명과 복건성 사람 25명이 남았다.

   
    ▲ 마카오에서 찾은 문순득 표류 관련 공문

3년2개월만에 귀가, 가선대부 벼슬

문순득이 여송국 측 왕(높은사람)을 만나 순풍이 오면 송환하겠다는 답변을 들었다.

그로부터 두달이 지나 배 주인이 여송국 사람인 광둥성 무역선이 도착했다.

그러나 석달이 지나서야 출항이 결정됐다. 문순득이 배삯으로 은전 12냥을 내고 승선하여 배 안에서 밥을 지어 먹으면서 11일만인 1803년 9월 9일 마카오에 도착했다.

항구에는 형형색색 깃발이 나부끼고 노랑머리 서양인들이 나다니는 모습이 특이했다.

석달가량 마카오에 체류하면서 관청으로부터 조사를 받았지만 말이 통하지 않아 청나라 관리가 조선인 표류객임을 말해주었다.

이 결과 “고려난민 문순득 등이 표류하여 청 왕조 관원에게 송환을 아뢴다”는 결정으로 광둥성을 거쳐 베이징으로 떠났다.

그해 11월 4일, 조선 조공사를 만나 12월에 귀가하여 계산하니 홍어 사러 나갔다가 3년 2개월만에 돌아온 표류였다.

집에 돌아온 문순득은 가까운 집안에 거처를 정한 정약전 선생이 묻는 말에 답변하여 ‘표해시말’이 기록될수 있었다.

   
    ▲ 벽장에서 '표해시말'을 꺼내는 문순득의 후손 문채옥 옹

이무렵 전라감사 이면응이 부임길에 친구 정약용을 만나 그의 형님 정약전에게서 들은 문순득 이야기를 들려주었다.

이 감사는 마침 제주도에 여송국 표류객이 9년째 머물고 있다면서 문순득이 통역해 주면 본국으로 송환할수 있을 것이라고 했다.

문순득이 제주도로 가보니 여송국 표류객이 목장에 거주하고 있지만 ‘막가외’(莫可外,마카오)라는 말뿐 어느나라 사람인지 전혀 소통이 되지 않은채 울고 있었다.

이보다 앞서 제주목사가 그들을 청나라로 보냈지만 다시 제주도로 되돌아와 기약없는 세월을 보내고 있다는 사연이었다.

   
    ▲ '표해시말'

당초 표류 여송국인은 5명이었으나 청나라 갔다가 한명 죽고 제주도로 되돌아와 한명이 죽고 3명만 살아 있었다.

문순득이 여송국 말로 그들과 대화를 시작하니 표류한지 6년만에 처음으로 말문이 열린 감격에 엉엉 울어댔다.

제주목사가 조정에 고하고 중국을 거쳐 본국으로 송환했으니 문순득이 ‘조선을 깨웠다’라는 역사의 평가를 받게 된 것이다.

당시 조정에서 문순득에게 내린 가선대부(嘉善大夫) 종2품 공명첩은 직계 후손 문채옥씨가 소장하고 있다고 한다.

문순득의 묘는 해남군 화산면 봉리리에 위치하며 음력 10월 15일에 후손들이 시제를 받들고 있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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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어 장수에서 최초 필리핀 통역관이 된 '문순득' 이야기 [신비한TV 서프라이즈]  -다시보기-

[KBS 역사스페셜] 홍어장수 표류기, 세상을 바꾸다  -다시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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씨티맨 [쪽지 보내기] 2017-01-21 22:48 No. 127275084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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얼마 안살고도 누군 통역관됐는데
난 7년을살고도 아는게 별로니....
에공.ㅋ
재키찬 [쪽지 보내기] 2017-01-22 14:05 No. 127275177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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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씨티맨 님에게...
ㅋㅋㅋ
그때 당시엔 한국 말 할수 있는 사람이 없었으니 그럴거에요.

늦둥이 미래를 위해서 생각 많이 하셨어요 ?

멀리서 나마, 늦둥이 응원 합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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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어가변해야나라가산다 [쪽지 보내기] 2017-01-21 22:55 No. 127275084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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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씨티맨 님에게...
필리핀 표류자들이 9년동안 한국에서 살아도 한국말 못하는것과 같은이유일듯함..
같은나라 사람들하고만 같이 있으면..
씨티맨 [쪽지 보내기] 2017-01-21 23:19 No. 127275087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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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홍어가변해야나라가산다 님에게...
좀 위로가 되네유.ㅠㅠㅠ
모두모두 [쪽지 보내기] 2017-01-21 23:34 No. 127275088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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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밌네요 ㅎㅎ
현지어에 적응하는 능력이 대단하네요
a
a
0906
aaaaaaaaa
바롱따갈로그 [쪽지 보내기] 2017-01-21 23:34 No. 127275089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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흥미로운 이야기입니다. 좋은 정보 감사합니다.
비상탈출 [쪽지 보내기] 2017-01-22 01:42 No. 127275097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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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시한번 느끼게 되네요ㅜㅜ
몇년을 있어도 아직도 대화하는데 문제니ᆢᆢ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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편하게살자 [쪽지 보내기] 2017-01-22 09:59 No. 12727513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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좋은 글 감사 합니다 좋은 하루 되세요
멍순이 [쪽지 보내기] 2017-01-22 11:25 No. 1272751442
4 포인트 획득. ... 힘내세요!
좋은 정보 보고갑니다.
hanulsora [쪽지 보내기] 2017-01-22 12:03 No. 12727515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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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란만장한 이야기내요 ^^;
외국어는 역시 한국어 안쓰는 데서 배워야하나봐요
parmirs [쪽지 보내기] 2017-01-22 16:37 No. 127275208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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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말 대단한 분이셨네요.
장군의아덜 [쪽지 보내기] 2017-01-23 01:19 No. 127275285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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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슨득이란 분의 후손이신가여? 홍어가 변해야....라시니..ㅋㅋㅋ
글 잘 읽었습니다 흥미롭네여..?
아무래도 시대가 시대였으니 가능했던거 같습니다..
그럼 우리도 조선시대의 통역관이 될 수도? 벼슬도 받고..?ㅎㅎㅎ
아.. 백튜더 퓨처라는 영화가 생각 납니다.. 그런 걸 타고서 과거로 간다면 아마도 저는 제 1의 통역관이 될 수도 있었을 법을,... 그럼 인생 자체가 달라져 있것네여..ㅋㅋㅋ
이것도 시대를 잘못타고 태어난건가..아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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