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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산 안창호 선생이 필리핀에서 독립운동을 하셨던 사실을 아시나요?(6)

Views : 5,380 2018-04-20 00:59
자유게시판 127383286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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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해는 도산 안창호 선생이 순국하신지 80주년이 되는 해입니다.
대한제국의 교육개혁운동가 겸 애국계몽운동가이자 일제 강점기의 독립운동가, 교육자,
정치가이셨던 도산 안창호 선생께서는 일본 제국의 영향력이 강대해지자 미국으로 망명,
이후 미국 사회에서 활동하였으며 1919년 상하이에 임시의정원과 임시정부가 수립되자 임시
정부에 참여하여 활동했습니다.

우리나라의 독립을 위해 다양한 운동을 벌이셨던 안창호 선생께서도 필리핀에서도 독립
운동의 일환으로 만주의 한인들을 필리핀으로 대규모 이주시킬 계획을 세우고 필리핀에
오셨었는데 아래의 글은 독립운동사연구소에서 펴낸 것을 기초로 만들어진 보고서중
필리핀과 관련된 부분만을 게재한 것을 옮겨 온 것입니다.


1928년부터 그는 중국과 만주 밖에 이상촌을 건설할 계획을 세운다. 1929년 2월 도산(島山) 안창호(安昌浩)는 일제가 목을 죄어 오던 상하이와 만주 지역을 벗어나 새로운 독립운동 거점 개척을 시도했다. 안창호는 만주의 한인들을 필리핀으로 대규모 이주시킬 계획을 세우고 필리핀 이민국에 찾아갔다. 중국과 만주의 마적단, 일본의 경찰과 밀정, 조선총독부의 경찰, 독립운동가를 사칭하는 강도단의 출몰에서 만주 동포들을 구제할 방안으로 그는 만주 이주민들의 필리핀 이주를 위해 마닐라 등지의 적당한 지점을 물색하는 등 2년간 노력하였다.

그런데 “일본 여권을 갖고 와야 하고, 1인당 50원의 지참금을 가져와야 한다”는 것이 필리핀 외무부 당국이 내건 조건. 당시 50원은 쌀 5가마 값으로, 노동자 1명 월급이 쌀 한두 말에 불과했던 것을 감안할 때 너무 큰돈이었고, 일본 여권을 얻는 것은 더 어려웠다. 안창호는 이승만과 윤치호에게 도움을 청해 비용을 마련하였다. 그러나 일본의 여권을 얻는 것은 어려웠고, 그가 처음에 중국인이나 외국인으로 가장하지 않았으므로 다시 중국인이나 타국 사람이라고 말을 뒤집기도 어려웠다. 안창호는 케손(Quezon) 상원의장 등 유력인사들을 만나 도움을 요청했지만 결국 좌절하고 만다. 하지만 필리핀에 ‘대한인국민회 필리핀지부’를 설립하는 등 부분적인 성과도 있었다.

출처 : 조선일보, 2006. 02. 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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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두모두 [쪽지 보내기] 2018-04-20 01:24 No. 1273832876
34 포인트 획득. 축하!
그때 필리핀에 한국인이 이주에 성공했다면
지금 한인사회가 어찌 되었을까 싶네요
그때나 지금이나 한국은 필리핀에서 대접을 못받네요 ㅠㅠ
a
a
0906
aaaaaaaaa
이뱅신 [쪽지 보내기] 2018-04-20 09:18 No. 1273832982
50 포인트 획득. 축하!
@ 모두모두 님에게...
원조는 꾸준히 해주는데 대접은 못받고..
Uzura [쪽지 보내기] 2018-04-20 09:48 No. 1273833018
48 포인트 획득. 축하!
당시 한국은 일본의 식민지였고, 필리핀은 미국의 식민지였습니다.
가쓰라 태프트 조약으로 미국은 한국이 일본의 식민지를 인정했고, 일본은 필리핀이 미국의 식민지임을 인정했습니다.
그 상황에서 한국의 독립운동을 필리핀이 도와주기는 부담이 있었다고 봅니다. 미국은 당시 중립적 입지를 고지 하고 있었고, 일본과는 밀약을 통해 서로의 식민지를 인정하는 관계였으니까요.
미국의 눈치를 봐야 하는 필리핀이 일본의 여권을 요구한 이유는 여기에 있다고 봅니다.
또한 미국의 식민지로 있으면서 필리핀내에서는 크게 불만이 터져 나오지는 않았습니다.
스페인 식민지에서 좀더 나은 주인을 만난 상태였기에 한국과 달리 필리핀에서는 독립운동이 크게 일어나지 않았으니까요. 그상황에서 부담이 되는 한국의 독립군 지부를 만들게 하지는 않았을것이라 봅니다.

결국 필리핀과 한국의 이해관계가 맞지 않았던 것이죠.
EmptySpace [쪽지 보내기] 2018-04-20 11:02 No. 1273833148
2 포인트 획득. ... 쉬엄 쉬엄~
@ Uzura 님에게...

좋은 의견 감사드립니다. 말씀하신 것처럼 가쓰라-태프트 밀약으로 인해 일본과 미국이 서로의 식민지를 인정하고 있었고 이로 인해 우리나라의 주권이 말살된 상태에서 우리나라의 여권을 필리핀에서 받아줄리 만무했고 또 독립운동의 거점으로 활용하려는 목적이 있었기 때문에 여러 정세를 고려하면 우리나라의 이주민을 받아주기가 어려웠을 겁니다.

가쓰라-태프트 밀약의 주인공이었던 태프트는 필리핀 초대 총독(1901년~1904)을 지냈으며, 향후 미국의 27대 대통령에 당선되었더군요...LRT1이 지나가는 거리를 Taft Ave.라고 하는데 이 태프트의 이름을 사용한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박달 [쪽지 보내기] 2018-04-20 11:25 No. 1273833176
35 포인트 획득. 축하!
@ EmptySpace 님에게...

MOA 가는 길에 MRT를 자주 이용하는데 마지막역이 Taft station이죠. 제가 '태으트 플리즈'라고 영어로 발음하면 창구직원이 따으트?라고 반문하곤 했습니다. 어디서 조금 익숙한 글자라고 생각했는데, 님이 여기서 역사적인 사실을 알려주셨군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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Victhor [쪽지 보내기] 2018-04-20 13:42 No. 1273833272
39 포인트 획득. 축하!
사실을 아시나요
꾸준히 해주는데 대접은 못받고..
좋은 의견 감사드립니다. 말씀하신 것처럼 가쓰라-태프트 밀약으로 인해 일본과 미국이 서로의 식민지를 인정하고 있었고 이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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