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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동안잘못알게되고 다시알게되는역사(11)

Views : 6,027 2018-07-17 07:12
자유게시판 12739307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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섬체질 [쪽지 보내기] 2018-07-17 08:09 No. 1273930745
뱀같은놈.
니머리위 [쪽지 보내기] 2018-07-17 10:36 No. 1273930889
일제시대 교사에서 만주군관학교 일본육사를 거쳐 관동군장교로 해방후 남조선노동당 중간총책 그후 신분 발각 후 특무대장 김창룡이 한테 죽을고비...조직을 밀고 후 저만 살아남음..물론 조직원다 총살..그후 625때 군인으로 복권 ...그후 쿠데타..

기막힌 기회주의자..
가을하늘01 [쪽지 보내기] 2018-07-17 11:53 No. 1273930980
철저한 기회 주의자....
일제 시대 큰칼 차고 싶어 일본군 장교로 자원 입대
해방후 좌익이 득세 하자 좌익쪽에 서서 군내 남노당 간부로서 포섭 책임자로 지내다가

미군정이 군내 숙청을 감행하자... 군내 남로당 조직책을 다 불어 자기 혼자만 살아남..

6/25전쟁시 정보장교로 복귀 하여 전쟁후 군내 다수파들의 보복이 두려워 자신이 먼저
구테타로 헌법 유린...

철저한 기회 주의자 맞죠...
똥꿈을꿈 [쪽지 보내기] 2018-07-18 02:24 No. 1273931996
@ 가을하늘01 님에게...
일본군 장교가 아니라 만주국군 장교였습니다.
교사시절 일본인 동료교사를 두둘겨 패고 만주로 달아났는데
어떻게 일본군 장교가 될수 있습니까?
그리고 극우에 가깝던 김구선생의 친아들 김신장군이 5.16혁명의 핵심세력중 한명이었는데
왜 박정희 대통령이 좌익이고 친일파라는 소리가 나오죠?
audentrip [쪽지 보내기] 2018-07-17 13:10 No. 1273931062
공감이 가는 글이네요. 좋은자료 잘 보았습니다.
곱등어 [쪽지 보내기] 2018-07-17 13:20 No. 1273931079
정권바뀌면 어덯해든 내리깔려고

세계에서 인정해주는데

배고픈넘한테 빵이먼저냐..?? 자유가 먼저냐..??



똥꿈을꿈 [쪽지 보내기] 2018-07-17 17:58 No. 1273931564
조작 선동영상..이런거 믿는 사람도 있군요.
mrgre****@네이버-48 [쪽지 보내기] 2018-07-17 21:46 No. 1273931834
웃음만 나오는군요
아직도 인터넷에 떠도는 출처불명의 저런 영상을 돌리다니...
Dreams came true
똥꿈을꿈 [쪽지 보내기] 2018-07-18 01:49 No. 1273931989
@ mrgre****@네이버-48 님에게...
이 텽상을 만든 민족문제연구소라는 곳의 정체를 알면 왜 이런 역사조작을 하는지가 이해가 됩니다.
bugoy [쪽지 보내기] 2018-07-18 08:22 No. 1273932099
다음백과
민족문제연구소
다른 표기 언어
Institute for Research in Collaborationist Activities , 民族問題硏究所

요약 1949년 친일파에 의해 와해된 반민족특별위원회의 정신과 평생을 친일문제 연구에 바친 사학자 임종국의 유지를 이어 1991년 설립되었다. 비영리 사단법인인 민족문제연구소는 한국 근현대사의 쟁점과 과제를 연구·해명하고, 한일 과거사 청산을 통해 역사를 바로 세우며, 친일인명사전 편찬을 통해 일제의 잔재를 청산하고자 설립되었다.
1991년 2월 27일 반민족문제연구소라는 이름으로 설립되었고 1995년 6월 1일 민족문제연구소로 이름을 바꾸었다. 2001년 12월 통일시대민족문화재단을 출범시키고 친일인명사전편찬위원회를 재단 산하 특별위원회로 발족했다.
2004년 5월에 친일반민족행위진상규명 시민연대를 발족하였고, 같은 해 5월 24일 심산상을 수상했다. 2005년 4월에는 일제협력단체사전으로 단재상을 수상했다.

1949년 친일파에 의해 와해된 반민족특별위원회의 정신과, 평생을 친일문제 연구에 바친 사학자 임종국(林鍾國)의 유지를 이어 1991년 설립되었다. 민족문제연구소는 한국 근현대사의 쟁점과 과제를 연구·해명하고, 한일 과거사 청산을 통해 굴절된 역사를 바로 세우며, 친일인명사전 편찬을 통해 일제의 잔재를 청산하고자 설립되었다. 비영리 사단법인으로 재정은 회원들의 회비와 후원금 등으로 충당한다.

1989년 임종국이 타계하면서 그의 빈소에서 연구소 설립이 결의되었고, 1991년 2월 27일 김봉우(金奉雨)를 소장으로 하여 반민족문제연구소라는 이름으로 설립되었다.

1993년 제3회 윤상원상학술부문 단체상을 수상하였고, 1995년 6월 1일 민족문제연구소로 이름을 바꾸고, 이돈명(李敦明)을 초대 이사장으로 하였다. 2001년 8월 친일 인사 3,090명의 명단을 발표하였고, 12월에는 통일시대민족문화재단을 출범시키고 당일 학계를 망라한 120여 명의 학자들로 구성된 친일인명사전편찬위원회를 재단 산하 특별위원회로 발족했다.

2004년 1월부터 친일인명사전 편찬 국민모금을 시작하여, 2005년 8월 29일에는 사전에 오를 친일 인사 3,090명의 명단을 1차 발표하였고, 2008년 4월에는 매국, 중추원, 관료, 경찰, 군, 사법, 종교, 문화예술, 언론출판 등 16개 분야로 나누어 총 4,776명(중복 인사 제외)을 발표하여 같은 해 8월 발간을 예정으로 하고 있다.

2004년 5월에는 강만길·함세웅·최병모를 공동대표로 하여 친일반민족행위진상규명 시민연대를 발족하였고, 같은 해 5월 24일 심산상을 수상하였다. 2005년 4월에는 일제협력단체사전으로 단재상을 수상하였다.

주요 활동으로는 박정희기념관 건립 저지, 친일파 기념사업 저지, 조선일보 반대운동, 일제하 강제동원 진상규명, 한일협정 개정, 한일 교과서 바로잡기 등을 해오고 있다.
똥꿈을꿈 [쪽지 보내기] 2018-07-18 18:14 No. 1273932811
@ bugoy 님에게...


민족문제연구소의 정체
김필재 필자의 다른 기사보기 스크랩하기기사목록 이메일보내기프린트하기글자 작게 글자 크게
`민족문제연구소`...... ‘범민련’ 간부 대거 포진
‘김일성 영생론’ 칭송자가 지도위원

“16대 때 통과된 친일진상규명법은 국민들을 실망시킨 누더기 법률”이라며 열린우리당 김희선 의원과 함께 친일진상규명법 개정을 주도한 민족문제연구소는 국내 친북이론가들이 대거 결집해 있는 단체이다. 민족문제연구소의 이사진 중 열린우리당 김희선 의원, 이창복 전 의원, 이해학 씨(성남주민교회 목사)는 이적단체인‘조국통일범민족연합남측본부(이하 범남본)’에 지난 91년 창립준비 단계부터 참여해 온 인물이다.

김희선 의원은 91년 범남본 창립준비위원을 거쳐 92년‘전국연합’통일위원장을 역임했고, 16대 국회에 진출한 이후 국가보안법철폐, 이라크파병반대, KAL기 진상규명 등을 주도해왔다. 이창복 전 의원은 84년 민주통일민중운동연합(민통련) 사무처장, 89년 전국민족민주운동연합(전민련) 상임의장을 거쳐 93년부터 98년까지 ‘전국연합’상임의장을 역임했다.

연구소 이사진 중 이관복 씨(박정희기념관반대국민연대 대표)는 범남본 사무국장을 거쳐 현재 범남본 산하 여중생범대위 고문으로 있으며, 장두석 씨(민족의학연구회장)는 현재 범남본의 고문역할을 담당하고 있다. 범남본은 북한의 대남적화통일노선을 추종한다는 이유로 결성단계인 지난 91년 11월 서울고등법원에서 이적단체판정을 받았고, 97년 5월 16일 다시 대법원에서 이적단체 판정을 받은 단체이다.

전국연합 역시 범남본과 함께 1민족, 1국가 2정부의 북한식 연방제통일방안을 공개적으로 표방하고 있는 단체로서 지난 한 해 동안 500여 건 이상의 친북반미운동을 전개한 단체이다.

김남식 지도위원,“수령은 인민의 뇌수”

민족문제연구소에는 강만길(상지대 총장), 리영희(한양대 명예교수), 김남식(인터넷매체 통일뉴스 고문) 등 친북지식인들도 지도위원이라는 직함으로 참여하고 있다. 통일운동가로 알려진 김남식 씨는 온오프라인 상에서‘김일성 영생론(永生論)’을 옹호하 는 등 김정일 체제를 미화해온 인물이다.

김씨는 지난 9일 인터넷매체 통일뉴스에 게재한 ‘북한의‘영생 10년’의 이해를 위하여’라는 글을 통해 “김일성 수령은 인민대중 위에 군림하는 것이 아니라 인민대중의 뇌수의 역할을 하는 중심이다” “오늘의 북한사회는 선군(先軍)정치에 의해‘주체혁명(主體革命)’의 위업(偉業)을 이끌어 왔다” “김일성 수령을 영원한 수령으로 모시는 조건에서 선군(先軍)정치는 영원히 지속될 것이 분명하다”는 등 주장을 펴기도 했다.

리영희 교수와 강만길 교수 역시 온오프라인 상에서 각각 “남한체제의 사회주의적 변화를 통한 통일이 이뤄져야 한다(지난 해 11월22일 민족통일학회 발언)”“미국을 혈맹으로 보면 통일을 이룰 수 없다(1월 31일 동 학회 발언)”는 등 반미민족공조 논리를 개발해 온 인물들이다.

임헌영 소장,‘남민전’사건 10년 복역

민족문제연구소 소장인 임헌영 씨는 지난 79년 적발된 남조선민족해방전선(남민전)사건의 연루자이다. 남민전은 검거 당시 안용웅 등이 월북, 김일성에게 사업보고서를 제출하는 등 북한으로부터 구체적 통제를 받아 온 공산혁명조직으로 밝혀졌다. 남민전은 검거 당시 남한 내 북한이 요구하는 사회주의혁명이 성공할 경우 게양할 붉은 별이 그려진 대형 ‘전선기(戰線旗)’까지 만들어 놓았고, 공작금을 마련키 위해 혜성대(彗星隊)라는 조직을 만들어 재벌집 강도 등을 예비하기도 했다.

특히 남민전은 검거 이후 교도소 내에서 오히려 조직을 강화시켜 80년대 이후 국내 좌익세력의 토대가 됐던 것으로 알려져 있다. 전향한 좌익사상범으로서 지난 89년 ‘수인(囚人)번호 3179’라는 책을 썼던 김정익 씨는 자신의 저서를 통해 “남민전 조직원들은 교도관연락책까지 동원, 교도소 내외에 비밀지령을 주고받으며 조직을 강화시킬 정도로 치밀했다”고 적고 있다.

김 씨는 남민전 핵심관련자인 시인 고 김남주 씨로부터 공산주의사상교육을 받은 내용을 같은 책에서 기록하고 있는데, 김남주가 반복해 교육했던 내용 중 한 가지는 아래와 같다.

“계급적 적들을 증오하라. 철저히 증오하라. 남조선에서 민중혁명이 일어나면 최우선적으로 해야 할 일이 이 사회의 민족반동세력을 철저히 죽여 없애는 것이다. 그 숫자는 200만 정도는 될 것이다. 그래야만 혁명을 완전하게 완수할 수 있기 때문이다.”

남민전 사건에 연루됐던 임헌영 소장은 지난 89년까지 복역한 후 대통령특사로 출소했다.

한상범 의문사위원장이 前 소장

임헌영 씨 이전 민족문제연구소 소장을 역임한 인물은 2기 의문사진상규명위원회 한상범 위원장이다. 한 위원장은 불교인권위원회 공동대표도 역임하고 있는데, 지난 6월 7일에는 김정일을 ‘구국의 영웅’‘민족의 지도자’등으로 각종 문건에서 칭송하고 있는 이적단체 범청학련 남측본부 윤기진 의장을 “통일*민족운동에 온 힘을 다해온 데 치하한다”며 ‘박종철 인권상’을 수상하기도 했다.

김성욱기자 2004-08-02 오후 7:4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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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친일파처단` 주장 민족문제연구소장 임헌영씨,
70년대 최고공안건 `남민전`사건 주역

한일 과거사 청산을 통해 역사를 바로세운다는 명목하에 지난 91년 설립되어 `친일인명사전`편찬사업을 벌여온 민족문제연구소의 소장 임헌영(任軒永*중대 국문과 겸임교수)씨가 지난 70년대 최대 공안사건인 `남민전사건`의 연루자였음이 최근 임씨의 활동을 소개한 한겨레 신문사와의 인터뷰를 통해 밝혀졌다.

남민전 사건은 1960년대 인혁당, 통혁당사건 관련자들이 출감 후 노동자*농민*청년학생 등 각계각층을 규합 북한과의 연계 속에 결성된 지하공산혁명조직이다. 이 사건은 1970년대를 대표하는 간첩사건으로 관련자만 해도 84명(불고속자 포함)이 넘었다.

남민전은 안용웅(安龍雄)등이 월북, 김일성에게 사업보고서를 제출하는 등 북한으로부터 구체적 통제를 받아왔고, 남한 내에서 북한이 요구하는 사회주의 혁명이 성공할 경우 게양할 붉은 별이 그려진 대형 `전선기`(戰線旗)까지 제작하기도 했다.

당시 3차에 걸친 경찰발표에 의하면, 남민전은 불순세력을 규합하여 지하조직을 완성하고 도시게릴라 방식으로 사회혼란을 조성하여 민중봉기와 국가반란을 유도, 베트남방식의 적화를 획책해 왔다는 것이다.

당시 재판결과 사건의 총관련자가운데 1심과 2심에서 39명이 석방됐으며 임씨를 포함한 모든 남민전 사건 연루자들은 지난 1989년까지 모두 만기*특사로 출옥했다. 특히 작가 홍세화(洪世和)는 79년 당시 남미전 사건으로 프랑스에 망명, 공소시효가 만료된 이후인 99년 한국에 돌아와 현재 한겨레 신문 편집국 부국장으로 재직하고 있다.

- 친일인명사전편찬작업에 북한자료사용

한편 지난 2003년 민족문제연구소장의로 취임한 임씨는 최근 한겨레 신문과의 인터뷰에서 `기득권층의 밥그릇 챙기기에 만신창이로 뜯겨나가고 휘청거리는 대한민국에 진정한 역사의 혼을 불어넣겠다`면서 `역사 앞에서 진정 산 자와 죽은 자가 누구인지 친일인명사전 편찬과정에서 드러낼것`이라고 밝혔다. 그러나 민족문제연구소의 친일인명사전 편찬 과정에서 이들이 친일파 범주를 규정하기 위해 참고한 문헌의 일부는 1940년대 중반 북한에서 발간된 자료들로서 그 이념성에 있어 적지않은 문제가 제기되고 있다.

실제로 이들은 최근 `친일인명사전 편찬위원회 국민공청회 기조발제문`에서 `조선인민공화국의 전국인민대표대회 소집요강`(1946),민주주의민족전선의 친일파 규정(1946) `민주주의민족전선의 지방선거 행동강령 중 친일파 규정`(1947),`민주주의 민족전선의 미소공위 공동결의 6호 답신안`(1947) `북조선노동당의 미소공위 공동결의6호 답신안`(1947)등을 별첨자료로 제시하기도 했다.

김필재기자 2004-03-16 오후 10:33: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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